처음 길라몬스터(Gila monster)를 보면 사람들은 그 괴이한 외형과 무서운 이름에 주목합니다. 하지만 진짜 놀라운 건, 그 느릿하고 조용한 도마뱀의 침 속에서 인류를 위한 약이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제2형 당뇨병 치료제 ‘엑세나타이드(exenatide)’의 탄생 배경입니다.
1. 길라몬스터란?
길라몬스터는 북미 사막지대에 사는 유일한 독도마뱀으로, 하악(아래턱)의 침샘에서 독을 분비합니다. 이 독은 인간에게 치명적이진 않지만, 강한 통증을 유발하며 포식자나 위협을 물리치는 데 사용됩니다. 그런데 1990년대, 과학자들은 이 독에서 혈당 조절과 관련된 획기적인 단백질을 발견하게 됩니다.
2. 독에서 발견된 ‘GLP-1 유사체’
길라몬스터의 침 속에는 exendin-4라는 단백질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것이 바로 GLP-1(Glucagon-like peptide-1) 수용체를 자극하는 물질과 유사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 GLP-1은 인체에서 식사 후 분비되는 호르몬
• 췌장에 작용하여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 위 배출을 늦춰 식욕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음
그러나 인간의 GLP-1은 혈중에서 금세 분해되어
약물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3. 엑세나타이드의 탄생 – 생물학과 제약의 만남
길라몬스터의 exendin-4는 인간의 GLP-1보다 더 안정적이고, 분해되지 않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특징을 바탕으로 제약회사는 ’엑세나타이 (Exenatide)’라는 약물을 개발하게 됩니다.
• 2005년, 미국 FDA 승인
• 상품명: Byetta
• 제2형 당뇨병 환자 대상
• 1일 2회 피하주사로 사용
→ 최초의 길라몬스터 기반 치료제이자, 당뇨병 치료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 생물학적 제제입니다.
4. 어떤 효과가 있었을까?
엑세나타이드(또는 유사 약물)는 기존의 인슐린 주사와는 다르게 혈당 조절, 체중 감소, 심혈관 위험 감소 등 복합적인 효과를 보였습니다.
• 식사 후 혈당 상승 억제
• 체중 증가 없는 혈당 조절
• 식욕 억제 효과
• 장기 복용 시 심장 건강 개선 가능성도 제기됨
또한, 일주일에 한 번만 맞는 지속형 제제(Bydureon)도 후속 개발되어 길라몬스터의 단백질은 제2형 당뇨병 치료의 핵심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5. 왜 ‘길라몬스터’였을까?
이 동물의 특성 덕분에 이런 단백질이 축적되었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 1년에 몇 번밖에 식사하지 않는 느린 신진대사
• 한 번 먹은 음식을 오래 저장해야 하므로
• 혈당을 천천히 조절할 수 있는 생리적 메커니즘이 발달
→ 이 독이 단지 방어용이 아닌, 생존을 위한 생리 조절 수단이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마무리하며
길라몬스터는 사막의 ‘괴물’이 아니라 생명공학의 보석이자, 자연이 준 의학적 선물이었습니다. 그 독에서 찾아낸 단백질 하나가 수백만 명의 당뇨병 환자들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과학자들에게는 자연에 숨겨진 치료법을 향한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독은 해롭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치유는 가장 의외의 곳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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