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러시아 정교회란 무엇인가? – 정체성과 역사 소개

cococooo 2025. 5. 24. 11:30

러시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 문학, 예술뿐 아니라 ‘정교회(Orthodox Church)’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러시아 정교회는 단순한 종교를 넘어, 수백 년간 러시아인의 정체성과 국가 이념, 예술, 생활 양식에 깊은 영향을 끼쳐온 뿌리 깊은 정신적 기둥입니다. 이 글에서는 러시아 정교회의 역사와 본질, 그리고 현대 러시아 사회에서의 위치를 살펴보겠습니다.

정교회의 기원 – 동방과 서방의 분열에서 비롯된 전통


러시아 정교회는 ‘동방 정교회’에 속하는 교회로, 로마 카톨릭과 갈라져 나온 고대 기독교의 한 갈래입니다. 기독교 초창기에는 하나의 교회가 있었으나, 1054년의 ‘동서 교회 대분열’을 계기로 서유럽은 로마 카톨릭, 동유럽과 비잔틴 지역은 동방 정교로 갈라졌습니다.

정교회는 교황 중심의 로마 카톨릭과 달리, 여러 독립된 지역 교회들이 존재하며, 이들 모두가 교회 전통과 교리를 공유하면서도 자치적으로 운영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러시아 정교회입니다.


 

키예프 루시의 세례 – 러시아 정교회의 시작점


러시아 정교회의 공식적 시작은 988년, 키예프 루시의 블라디미르 대공이 비잔틴 제국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비롯됩니다. 당시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은 동방 정교회의 중심지로, 키예프 루시는 이곳으로부터 성직자와 성화를 수입하고, 교회 구조와 전례를 전수받았습니다.

이로써 러시아 정교회는 비잔틴 전통을 그대로 물려받으며 시작되었고, 키예프는 동슬라브 세계의 기독교 중심지로 부상합니다.


모스크바 제3의 로마론 – 러시아 정교의 독립과 강화


비잔틴 제국이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한 이후, 러시아는 정교회의 새로운 수호자로 자신을 자처하게 됩니다. 모스크바는 “제3의 로마”라 불리며, 신성한 기독교 제국의 후계자로 부상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러시아 정교회는 점차 독자적인 교회로 자리잡고, 1589년에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승인 하에 모스크바 총대주교가 임명되며, 완전한 자치 교회로 독립하게 됩니다.


표트르 대제와 교회 개혁 – 국가 권력의 종속화


러시아 제국의 표트르 대제는 서구화를 추진하며 교회의 권한을 축소하고 국가에 종속시킵니다. 1721년에는 총대주교 직을 폐지하고, 대신 국가 관리들로 구성된 ‘성무성원(성령성의회, Holy Synod)’이 교회를 관리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러시아 정교회는 국가 권력의 도구로 기능하며, 독립성과 영적 권위를 잃는 시기를 겪게 됩니다. 그러나 민중의 신앙은 여전히 강력하게 유지되었습니다.


소련 시기 – 핍박과 지하 신앙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볼셰비키 정권은 무신론을 국시로 내세우며 정교회를 탄압했습니다. 수많은 교회가 파괴되고, 성직자들은 투옥되거나 처형당했으며, 종교 활동은 극도로 제한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교회는 지하에서 활동을 지속했고, 2차 세계대전 중 스탈린은 애국심 고취를 위해 다시 교회를 일정 부분 허용하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의 신앙은 고난 속에서도 이어진 ‘순교자의 교회’로 불립니다.


현대 러시아와 정교회 – 부활과 재통합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정교회는 빠르게 위상을 회복했습니다. 수천 개의 교회가 복원되고, 성직자 수가 증가했으며, 공공행사에서의 종교 의식도 허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푸틴 정부와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러시아 정교회는 다시금 ‘국가 정신’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러시아인의 절반 이상이 자신을 정교 신자라고 말하며, 세례, 결혼, 장례 등 주요 인생 의례에서 교회의 역할은 매우 큽니다. 또한 해외의 러시아 디아스포라 교회들도 정체성을 지키는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정교회는 단순히 종교 기관이 아닙니다. 수세기에 걸쳐 러시아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해온 문화적, 역사적 기반이며, 정치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쳐온 하나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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