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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인류 최초의 인권 선언 ‘키루스 원통‘

by cococooo 2025. 4. 9.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인권의 씨앗


우리가 인권이라고 하면 흔히 프랑스혁명의 인권 선언이나, 20세기 세계인권선언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인 기원전 6세기, 인권이라는 개념을 명문화한 문서가 존재합니다. 그것이 바로 ‘키루스 원통(Cyrus Cylinder)’, 페르시아의 창시자 키루스 대왕이 남긴 역사적 기록입니다. 오늘은 이 놀라운 고대 유물을 통해, 인류가 얼마나 오래전부터 존엄과 자유를 고민해왔는지를 살펴봅니다.

키루스 원통이란?



 

기원전 539년경, 키루스 대왕이 바빌론을 정복한 후 만든 점토 원통


‘키루스 원통’은 길이 약 23cm의 점토 원통으로, 고대 바빌로니아 문자로 된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현재는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원통은 페르시아 제국을 창시한 키루스 2세(키루스 대왕)가 바빌론을 정복한 직후 작성한 것으로, 단순한 정복 선언문을 넘어서 피정복민에 대한 관용 정책, 신앙의 자유 보장, 노예 해방 등 인권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 “인류 최초의 인권 선언문”으로 불립니다.


키루스 대왕은 누구인가?

 

기원전 6세기,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의 창건자


키루스 대왕(Cyrus the Great)은 기원전 559년경부터 아케메네스 제국을 이끌며 페르시아 최초의 통일 제국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정복은 단순한 무력 침공이 아닌, 정치적 안정과 민족 간 융합을 추구한 통치 방식으로 유명합니다.

• 메디아 왕국 → 리디아 → 바빌론 순으로 정복
• 피정복민을 탄압하지 않고 자치권과 신앙 자유 부여
• 유대인을 바빌론 포로 상태에서 해방시켜 예루살렘 귀환을 허용

이러한 일련의 행보가 키루스 원통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키루스 원통에 담긴 내용

 

점토에 새겨진 고대의 인권 메시지


원문은 약 45줄 정도의 쐐기문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정복자의 선언
• 바빌론을 정복하게 된 신의 뜻과 정당성 선언
• 이전 통치자의 폭정을 비판하며 자신의 통치 정당화

2. 자유와 관용의 정치
• 포로와 노예 해방 선언
• 모든 민족에게 신앙의 자유 보장
• 각 민족의 신전을 재건하고 종교를 존중하겠다는 약속

3. 화합과 평화의 강조

• 왕 자신은 ‘모든 민족의 보호자’로서 정의롭게 다스릴 것을 맹세
• 제국 내 다양한 문화, 언어, 종교를 인정하고 융합할 뜻 표현

이러한 내용은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이며, 오늘날의 다문화주의, 종교 자유, 자율권 존중 등의 가치를 떠올리게 합니다.



 

유대 역사와의 연결


구약성서에도 등장하는 키루스

흥미롭게도 키루스 대왕은 성경 구약의 ‘에스라서’와 ‘이사야서’에도 등장합니다. 유대 민족이 바빌론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포로로 잡혀온 이후, 키루스가 이들을 해방시키고 성전 재건을 허락한 이야기입니다. 이로 인해 그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도구’로 불리는 이방의 왕이 되었습니다.

현대에서의 의미


1. UN과 인권의 상징

1971년, 이란 황제 파흘라비는 키루스 원통을 유엔에 복제본으로 기증하며 “이것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인권 선언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후 키루스 원통은 세계 인권 선언의 상징물 중 하나로 간주되며, 유엔 본부에도 전시된 바 있습니다.

2. 국가 간 문화 외교의 매개체

키루스 원통은 이란이 자국 문화의 정체성을 세계에 알리는 상징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동시에 고대와 현대를 잇는 인권 개념의 기원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도 더 된 옛 문명이 ‘자유’와 ‘관용’을 이야기했다는 사실은 놀랍고도 감동적입니다. 키루스 대왕의 선언은 단순한 고대 기록을 넘어,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인권’은 수많은 역사적 경험과 희생 위에 서 있지만, 그 뿌리는 어쩌면 고대 페르시아의 작은 점토 원통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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