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남동쪽으로 불과 30km. 넓지 않은 언덕길을 따라 들어가면, 갑자기 깊고 고요한 원형 호수가 눈앞에 나타납니다. 이곳은 바로 네미 호수(Lago di Nemi).
관광지로는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고대 로마의 신화와 황제의 야망이 고스란히 깃든 이탈리아 라치오 지역의 비밀 같은 장소입니다. 호수를 감싸는 숲은 한때 여신의 신전이 서 있던 신성한 장소였고, 호수 아래에는 한 황제의 거대한 배들이 묻혀 있었습니다. 오늘은 ‘달의 여신 디아나’와 로마 황제 칼리굴라가 남긴 전설, 그리고 네미 호수에 얽힌 미스터리한 이야기들을 함께 들여다봅니다.
1. 네미 호수란 어떤 곳인가?
네미 호수는 라치오 주 알바니 언덕(Alban Hills)에 위치한 화산 칼데라호입니다. 지름 약 1.5km로 규모는 작지만, 거의 완벽한 원형을 이루는 물빛 깊은 호수는 예로부터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습니다.
• 고대 로마 시대에는 ‘Speculum Dianae’ – 디아나 여신의 거울로 불림
• 숲과 호수 전체가 여신 숭배의 장소였음
• 지금도 이 호수 전체를 내려다보는 작은 도시 네미(Nemi)는 라치오의 감성적인 언덕마을 중 하나
2. 달의 여신 디아나와 숲의 사제
네미 호수의 숲에는 고대 로마의 달의 여신 디아나(Diana Nemorensis)를 모시는 디아나 신전(Temple of Diana)이 있었습니다. 디아나는 야생, 달, 출산의 여신으로, 사슴과 활을 든 모습으로 자주 묘사되죠.
• 이 숲에서는 디아나를 섬기는 특별한 사제가 존재했는데,
• 이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전임 사제를 죽여야만 했습니다.
이 잔혹하고도 신성한 의식은 로마 시인 버질(Virgil)이 전하며, ‘네미의 제왕(Rex Nemorensis)’으로 불린 이 사제는 고대 로마 종교의 가장 신비롭고 금기시된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3. 칼리굴라 황제의 거대한 배, 호수에 잠들다
기원후 1세기, 광기로 유명한 로마 황제 칼리굴라(Caligula)는 네미 호수에 거대한 선박 두 척을 건조하게 합니다. 이 배들은 전쟁용이 아니라, 신전 의식과 호화로운 연회를 위한 ‘수상 궁전’이었죠.
• 길이 70m에 달하는 대형 목선
• 대리석 바닥, 금도금 장식, 열탕이 있는 욕실까지 갖춤
• 선체 아래에는 철제 닻과 고급 선체 구조물 존재
이 배들은 칼리굴라 사후 가라앉았고, 수백 년간 전설로만 남아 있었습니다.
4. 호수에서 배를 끌어올리다 – 20세기 대발굴
1930년대, 무솔리니 정권은 칼리굴라의 전설을 실제로 증명하기 위해 호수 물을 퍼내고 배를 발굴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놀랍게도 두 척의 거대한 배는 정말 존재했고, 이후 복원되어 네미 해양 박물관(Museo delle Navi Romane)에 전시되었죠.
하지만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과 독일군 교전으로 두 배 모두 화재로 소실되고 맙니다.
지금은 복제 모델과 당시의 설계 도면, 남아 있는 부품 일부만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5. 오늘의 네미 – 고요한 풍경 속 잠든 신화
현재의 네미는 조용한 언덕 마을로, 딸기와 장미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호수 위에는 아무런 배도 없고, 신전은 폐허로만 남아 있지만, 그 풍경 자체가 시간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 호수 둘레를 따라 산책하거나,
• 작은 박물관에서 칼리굴라의 배를 상상해보고,
• 여신 디아나의 숲에서 명상에 잠겨보는 것도 좋습니다.
맺음말 – 물속에 잠든 이야기, 네미
네미 호수는 그 크기나 유명세보다도, 그 안에 잠든 신화와 야망의 깊이로 기억되는 곳입니다.
달의 여신을 숭배하던 숲,
자신을 신이라 믿었던 황제의 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고요히 품고 있는 호수.
로마에서 멀지 않은 이 작은 호수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묻고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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